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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한국 근대문학사의 거목인 청마 유치환은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507-5번지인 이곳에서 1908년
음력 7월 14일 아버지 유준수와 어머니 박우수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청마선생은 11세까지 한학을 배웠으며, 일본 토쿄 토요야마 중학에 입학하였으나 가운이 기울
어져 귀국, 1926년 동래중학교 5년 편입 후 1927년 연희전문학교를 수료하였다.

1931년 문예월간 제2호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한 후 1937년 당시 시단을
풍미했던 정지용의 시에 감동, 형 유치진과 함께 동인지 ‘생리(生理)’를 발간 문학 활동을 시작
하였고, 1939년 첫 시집 ’청마시초‘ 발간과 더불어 활발한 창작활동 을 펼쳐 온 결과,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경상북도 문화상
및 예술원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그 후 1957년에는 한국시인협회장에 피선되었으며 경주여중고, 경주고, 경남여고 교장을 거쳐 1967년 부산남여상 교장 재임시
부산 좌천동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한국문단의 거목이다.

선생의 작품은 허무를 극복하려는 남성적, 의지적인 시향으로 사람의 삶 어디에나 있는 뉘우침, 외로움, 두려움, 번민 등의 일체
로부터 벗어난 어떤 절대적인 경지를 갈구했으며 그 해결의 길을 일체의 생명적인 것에 대한 허무주의적 자각에서 찾고자 했다.

유작으로는 ‘청마시초(1939)’, ‘생명의 서(1947)’, ‘울릉도(1948)’, ‘청령일기(1949)’, ‘청마시집(1954)’, 등 13권의 시집과 주옥같
은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깃발’을 비롯한 작품의 소재를 청정해역과 천년의 절경을 간직한 거제의 모습을 담았고, ‘거제도둔덕
골’은 8대로 살아온 고향임을, 청마가 잠들어 있는 인근 선영 지당골의 모친 묘비에 있는 ‘사모곡’의 내용에는 “멀지 않아 제 또한
당신 곁에 당신 모셔 이 하늘 우러르고 묻힐 날을 기약 하오매”라는 간절한 염원이 깃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출생기’ 에서는 열나흘 새벽달빛을 밟고 유월이가 이고 온 왕고모댁의 제삿밥을 먹고 난 후 자신이 태어났다고 직접
적으로 표현하는 등 출생지인 이곳 거제도 둔덕골에 대한 애틋한 향수가 청마의 작품 곳곳에 나타나 있다.

문학활동

생명에 대한 애정이 시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청마 선생은 1931년 문예월간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 뒤 여러 작업을 전전하던 중 부산에서 문예동인지 <생리>를 주재. 간행했고, 1939년 초기의 대표작인 <깃발>, <그리움> 등
53편의 시가 수록된 첫 번째 시집 『청마시초(靑馬詩抄)』를 발간하였다.

1940년 만주로 이주하여 <절도>, <수>, <절명지> 등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이러한 작품들은 만주생활에서 느낀 고독감을 읊은
것으로 두 번째 시집 『생명의 서』에 실려 있다. 특히 이 시집에 수록된 <생명의 서> <일월(日月)> 등은 그의 대표작으로 허무
와 고독을 극복한 강인하고 웅건한 의지가 담겨 있다.

그 후 『울릉도』, 『청령일기』를 발표하였고 8.15해방 뒤 청년문학가협회장등을 지내면서 민족문학운동을 전개했으며, 6.25
때에는 종군문인으로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때 쓴 시들을 모아 시집 『보병과 더불어』를 발간하였다.

『청마시집』, 『제9시집』, 『유치환시선』,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미루나무와 남풍』, 『파도야 어쩌란 말이
냐』 등 13권의시집을 발표하였고, 『예루살렘의 닭』, 『동방의 느티』, 『나는 고독하지않다』 등 3권의 수필집과 자작시 해
설집 『구름에 그린다』를 펴냈다.

청마는 교육현장에서 참사랑을 실천한 원정(園丁)으로 통영협성상업학교, 통영여중 교사, 안의중학교 교장, 경북대학교 문리대
강사, 경주고, 경주여중, 대구여고, 경남여고, 부산남여상 교장을 역임했다.



한때 청년문학가협회와 한국시인협회 회장으로서 해방 후 어수선했던 문단에 시 정신을 정립시켰는가 하면 문총 부산지부장, 예
술원 회원, 예총 경북지부장, 문협 부산지부장, 예총 부산지부장을 맡아 문화예술단체를 열성적으로 이끌었다.

그러하였기에 청년문학가협회 제1회 시인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경상북도 제1회 문화상, 아시아재단 자유문화상, 예술원상이
수여되었으며, 경주불국사 입구를 비롯하여 통영 남망산공원, 부산시 사하구 에덴공원, 둔덕면 하둔리 고향시비, 서울특별시 서
초구, 울릉도, 모교인 동래고 등 경향각지에 수십기의 시비가 세워졌고 통영에선 청마 문학관이 건립되었다.

생명파 시인으로서 그의 생명에 대한 애정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온갖 사물의 미세한 부분까지 관찰 하였으며, 이런 생명에 대한
애정이 그의 시의 바탕을 이루고 그 바탕 위에 동양적인 허무의 세계를 추구하며, 또한 이러한 허무의 세계를 극복하려는 원시적
인 의지가 살아있다.

의지와 애련을 한 몸에 지닌 청마는 시 보다도 인간을 더 소중히 여겼고, 항상 있는 자 보다는 없는 자의 편에 섰으며 권력과 권위
주의에 저항하는 지사적 풍모를 작품 속에서 보여 주었다. 청마는 인간탐구를 지향하고 생명의식을 앙양(昻揚)했던 생명파의 거
목으로 시 면면에서 우러나오는 웅혼(雄渾)하고 장대한 정신은 생명력이 생기 있게 가득 차 넘쳐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청마 유치환 선생은 우리나라가 자랑해야 할 대표적 문인입니다.

청마는 애틋한 서정의 세계에서 웅장한 의지의 세계에 이르는 자신의 시를 통해 한국시의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 보였습니다.
청마는 부조리한 패덕의 시대를 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일생 고뇌하였고, 그의 시는 그 의지와 소망의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삶에서 애련에 물들고 희로에 움직일지라도 다음 생애는 바위 같은 강건함으로 버티어 내리라는 청마의 다짐과 각오 속
에서 우리는 위대한 시인이 아닌 한 인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삶을 살았던 청마였기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를 남길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신을 불완전한 존재로 인식하고 그 한계와 미흡함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시인의 삶과 시를 통해 우리는 위로 받습니다.
청마와 함께 진정 행복한 시간 되십시오.

청마기념광장

위 치 거제시 둔덕면 방하2길 6
사업규모 부지면적 3,853m2
연 면 적 581.81m2(기념관:517.38m2, 생가:64.43m2)
사업기간 ‘01. 1 ~ ’07. 12(※생가준공 : 2000. 5월)
사 업 비 2,850백만원
시설규모 기념관(지하1층, 지상1ㆍ2층, 옥외화장실), 생가
주요시설 기념관(1ㆍ2전시관, 사무실), 생가, 시비 및 청동상

HTTP://WWW.CHEONGMA.OR.KR/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507-5번지 청마의 출생지로서

대지면적 645m2 에 연면적 64.43 m2 로 2000년 5월에 복원되었다.
생가는 두채의 초가로 싸리문 대문, 텃밭과 우물 등 청마가 태어난 1908년 옛 모습이 그대로 복원되어있다.

청마 유치환 선생의 묘소는 기념관으로부터 1.2Km 떨어진 둔덕면 방하리 지전당골 선산에 위치하고 있다.

청마묘소

청마 선생은 부산 남여상 교장 재식시인 1967년 2월 13일 밤 부산 문인협회 이사회에서 참석 후 귀가 도중 부산 좌천동 앞길에
서 교통사고로 운명하셨습니다.

처음 묘지는 부산 하단동 승학산 기슭에 안장되었다가 야안시 백운공원 묘원으로 이장 그 후 1997년 4월 3일 거제시 둔덕면 방
하리 지전당골 선산으로 청마선생의 묘를 이장함으로써 선생께서 생전에 사모비에 적힌 소원대로 어머니의 묏가에 영원히 잠들
수 있게 하였습니다.